Book, milk and SORA

Book, milk and SORA

네가 없어진다면
내 곁을 떠난다면
다시 볼 수 없다면
만나주지 않는다면

요즘 가끔 드는 생각인데 말이야 - 오지은

일에 있어선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이 가장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해 스트레스를 가능한 빨리 만나야 한다.
일은 언제나 있다.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다. 없는 것 같지만 항상 있고 있어도 또 생긴다. 그리고 아메바처럼 분열하여 생장한다. 회사원은 스트레스를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이상한 무한루프 속에 빠져버렸다.

만나기로 약속한 버스정류장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시간은 십 분, 이십 분이 지나 버스정류장보다 그가 뛰어 건너올 횡단보도 앞 벤치로 옮겨 앉았다. 평년보다 높은 온도에 습도까지 더해져 푹푹 쪘다. 핸드폰 배터리는 간당간당하여 밝기를 0으로 해놓았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락은 없었고 그렇게 약 오십 분이란 시간이 지났다.
전화가 왔다. “미안미안, 일이 길어져서~”란 말로 시작된 그의 목소리에 나의 기다림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오로지 그의 등장만을 바라며 그가 건너올 횡단보도만을 두리번거리던 내가 바보였다는 듯이.
일 때문일 것이라는 건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나에게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첫 마디가 “미안미안, 어디야? 오래 기다렸지? 어디라도 들어가서 있지. 금방 갈게.”라며 나를 조금이라도 걱정했다면 나의 마음이 이렇게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같이 보러갈 개그 프로그램의 방송국까지 어떻게 걸어가는지 정확히 알아보지 않았다며 (분명 분위기를 무마할 장난식의 말투였지만) 윽박만 지르지 않았다면 내 기분이 이렇게 나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 개그 프로그램의 방청을 권유한 사람은 그였기 때문이다. 사실 개그 프로그램따위 집어치우고 고래고레 소리지르며 싸우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화가 나면 나는 모든 행동을 정지시킨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섣부른 행동으로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행동정지는 이해와 관용의 과정이 아니다. 나의 행동정지는 상황인식, 상황분석, 나의 대처방법 등을 생각하는 가능한 이성적이어지려 노력의 시간이다. 하지만 나의 행동정지가 이루어지고 있을 땐 상대의 상태는 평소로 돌아와버린다. 상대가 이미 기분이 풀렸을 땐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난 이미 모든걸 해탈한 부처처럼 통용될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표현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나 모든 걸 표현하면 이 사랑이 금방 식어버릴 것만 두렵다. 그렇기에 더더욱 나의 행동정지는 길어진다. 나만 사랑하고 연애하는 것 같아 서러워 눈물이 나지만 그 앞에서 티도 낼 수 없다.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다. 나는 내가 불쌍하다.

퇴근길

퇴근길

결국 너라는 것이 서글프다.
왜 나는 너가 된 것인지.

한여름 같은 5월

한여름 같은 5월

아픔, 고통마저도 자신의 감각과 경험의 언어가 아니라 타인에 의해, 그것이 아무리 부모라 할지라도, 타인의 언어를 통해 규정당하는 것이 실은 비극이다. 아픔이든, 고통이든 스스로 느끼고 결정해야 한다. 섣부른 위로는 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더이상 타인이 자신의 삶에 무례하지 않도록, 허락 없이 개입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모두가 그들의 삶에 한마디라도 거들며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그러나 지지나 응원조차 실은 또다른 통제에 가깝다. 이 글 또한 그렇게 읽힐까 두렵다.

애완의 시대, 이승욱, 김은산, 문학동네

나는 나의 억지웃음에 지쳐 얼굴에 거품을 가득 뒤덮고 세면대를 붙잡고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었다.